‘85억 사나이’ 허경민(두산)은 팀의 5연패 탈출을 이끈 결승 만루홈런을 치고도 웃지 못했다. 자신의 부상으로 인해 팀이 부진에 빠졌다는 생각에 결코 좋은 기분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허경민은 지난 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과의 시즌 11번째 맞대결에 1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3안타(1홈런) 4타점 맹타로 팀의 5연패 탈출을 견인했다.
1회 내야안타, 6회 중전안타로 방망이를 예열한 허경민은 0-2로 뒤진 7회 1사 만루서 등장해 1B-0S에서 키움 필승조 김태훈의 2구째 몸쪽 투심(145km)을 받아쳐 좌월 역전 만루홈런을 쏘아 올렸다. 두산을 5연패 늪에서 탈출시킨 귀중한 한방이었다. 이는 2018년 6월 24일 대구 삼성전 이후 무려 1473일 만에 나온 그의 커리어 3번째 그랜드슬램이기도 했다.
경기 후 만난 허경민은 “그 전에 친 2개의 만루홈런보다 훨씬 의미가 깊은 홈런인 것 같다. 정말 필요했던 순간에 이렇게 팀에 도움이 되는 타구를 하나 날려서 너무 기분이 좋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허경민은 인터뷰 내내 “기분이 좋은 걸 표현할 수 없는 하루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실제 표정도 결승 홈런을 친 선수 치고 많이 어두워 보였다. 왜 그는 역전 홈런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일까.
허경민은 85억 FA 2년차인 올해 타율 3할7리로 활약하다가 돌연 무릎을 다치며 지난달 15일 부상자명단에 등재됐다. 6월 14일 고척 키움전에서 홈 쇄도 도중 오른쪽 무릎 외측 인대 부상을 당한 것. 이후 예상보다 재활이 길어지며 3주 가까이 자리를 비웠고, 주전 3루수가 빠진 두산은 4승 1무 10패의 부진 속 순위가 8위까지 떨어졌다. 3루 역시 마땅한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며 결국 주전 유격수 김재호가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이천에서 이를 바라보는 주전 3루수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허경민은 “다른 선수들이 좋은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걸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동료로서 아쉬웠다”라며 “내가 쉬고 싶어서 쉰 건 아니지만 중간에 팀이 연패에 빠지는 걸 보고 주축 선수로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제 돌아왔기 때문에 남은 경기는 빠지지 않고 계속 출전하겠다”라고 공백기를 되돌아봤다.
아울러 “지금 순위가 기분 좋은 선수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인정을 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반대로 반성을 하고 앞으로 더 노력이 필요한 순위이기도 하다. 나부터 노력을 하고, 단순히 노력만 하는 게 아닌 야구를 잘할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돼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결국 이 모든 복합적 감정이 뒤섞여 만루홈런에도 환한 미소가 나오지 않았다. 팀이 연패를 끊은 건 당연히 기뻤지만 그 동안 자신의 부상 이탈로 힘들어했을 선수들을 보니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허경민은 “나 혼자 좋다고 기분을 표현하기가 좀 그랬다”라고 털어놓으며 “앞으로 우리가 계속 이기다 보면 분위기가 좋아질 것이다. 나부터 파이팅을 해서 동생들을 잘 이끌어보겠다. 전반기 끝날 때 최대한 높은 순위에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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