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고졸 포수 최대어인 경기상고 엄형찬(18)이 미국 무대 진출을 택했다. 선배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게 엄형찬의 앞으로 과제다.
엄형찬은 지난 4일 국내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 관계자와 만나 입단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금은 확인되지 않았다.
계약 직후 엄형찬은 자신의 SNS에 캔자스시티 유니폼을 입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사진과 함께 ‘Dream to reality’(꿈이 현실로)라는 문구를 게재하면서 꿈의 무대 진출을 기뻐했다.
엄형찬은 올해 고교 포수랭킹 1위로 불릴 정도로 최대어 평가를 받았다. 경남고 김범석, 원주고 김건희와 함께 포수 빅3로 불렸지만 엄형찬이 이들보다는 앞서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국내 잔류를 택했다면 1라운드 내에 지명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올해 고교야구에서 성적은 타율 4할5푼2리(62타수 28안타) 3홈런 25타점 19득점 OPS 1.194에 볼넷 4개, 삼진 4개를 기록했다. 장타력과 컨택, 선구안까지 겸비했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도루저지 능력도 캔자스시티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엄형찬이 캔자스시티와 계약하면서 ‘부자(父子)’가 모두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엄형찬의 부친인 엄종수 경기상고 배터리 코치는 과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한 바 있다.
엄형찬처럼 고교 포수 최대어로 평가를 받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한, 그것도 캔자스시티와 계약한 직속 선배가 있다. 지난 2009년 계약금 60만 달러를 받고 캔자스시티와 계약한 신진호(31,은퇴)가 있다. 신진호는 화순고를 졸업하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노크했지만 싱글A 레벨까지만 밟고 국내 무대로 돌아와야 했다. 마이너리그 통산 240경기 타율 2할7리(815타수 169안타) 14홈런 84타점 OPS .605의 기록만 남겼다. 도루 저지율은 21%.
메이저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2년 유예기간 이후 명확하지 않은 신분으로 소송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했고 2차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NC의 지명을 받았다.
신진호는 2017년 입단 당시 OSEN과의 인터뷰에서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하기 힘든 환경을 고백한 바 있다. 그는 국내에 복귀하면서 “내가 첫 번째 할 일은 포수를 다시 배우는 일이다. 미국에서 배웠던 것은 포수가 아니라 소통이나 언어, 문화를 많이 배웠지, 기술적으로는 배우지 못했다. 아직 프로야구 포수라고 느끼지 못한다”라고 되돌아본 바 있다.
지도자가 부족한 마이너리그 시스템에서 선수 스스로 깨닫고 성장해야 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고 아쉬움을 표현했던 것. 엄형찬 역시 비슷한 환경에 놓일 것이 분명하다.
메이저리그라는 꿈을 위해 스스로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하는 고달픈 생활을 자처한 엄형찬이다. 아버지의 경험도 있기에 신진호와는 다르게 마이너리그 무대에 빠르게 적응할 가능성도 있다.
의사소통이 중요한 포지션인만큼 영어 회화를 빠르게 습득하고 환경을 깨닫는다면 선배와는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다. 또한 현재 루키리그에서 뛰고 있는 투수 진우영이라는 한국인 선배도 있다. 적응에 긍정적인 요소는 많다.
한편, 하지만 신진호는 한국 무대에서도 부상으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1군 무대 29경기에서 타율 1할4푼7리(34타수 5안타) 1타점의 기록만 남겼다. 2020시즌을 앞두고는 투수로 전향해 커리어를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방출 당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