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사인회. 농담으로,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다. 폭염 무더위에 구슬땀을 흘려가며 새벽까지 팬 한 분 한 분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줄 요량이었다.
LG 프랜차이즈 스타 박용택은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LG전에서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을 마치고 새벽까지 ‘무제한 사인회’를 실시했다. 어쩌면 LG팬들, 박용택 팬들에게 밤 10시부터가 진정한 은퇴식 시간이었을 것이다.
박용택은 은퇴식에 앞서 이날 낮 12시반부터 잠실구장 야외 어린이 캐치볼장에서 사인회를 가졌다. 자서전을 낸 출판사에서 마련한 자리였고, 2시간 가량 진행했다고 한다.
박용택은 경기 전 취재진 인터뷰에서 “낮 12시 반부터 2시간 정도 하고, 또 한 시간(구단 공식 팬 사인회) 정도 했다. 오늘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제한 사인회 하기로 했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낮에 줄을 섰다가 시간이 모자라 사인을 못 받은 팬들은 번호표를 받고서 흩어졌고, 경기 후 영구결번식이 끝나고 다시 받기로 했다. 박용택은 오후 3시부터 LG 구단이 마련한 공식 사인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단에서 미리 공지를 통해 사인회에 참석할 수 있는 100여명을 선정했고, 박용택은 오후 3시부터 중앙출입구 옆에서 이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사인을 받은 팬들이 “19년 동안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 “오랜 시간 함께 있어줘서 감사해요” 등의 말을 건넸고, 박용택은 “그런 얘기를 하시는데 계속 울컥울컥 하더라”고 언급했다. “(경기 전까지) 500번 정도 사인을 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구결번식은 밤 9시 20분쯤 끝났다. 박용택은 편안한 반바지, 반팔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밤 10시쯤 부터 다시 어린이 캐치볼장에서 ‘무제한 사인회’를 시작했다.
기자는 밤 10시 3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줄을 서고 있는 팬들의 숫자에 깜짝 놀랐다. 100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면서 줄은 직선이 아닌 꼬불꼬불한 곡선으로 뱀처럼 또아리를 틀 정도였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줄을 서고 있었고, 포기하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팬들은 야구공, 유니폼, 가방 등 다양한 물건에 사인을 받았다. 사인을 받고 나서는 박용택 옆에 서서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간혹 롯데팬도 있었다. 박세웅 이름이 마킹된 롯데 유니폼을 입고 온 팬은 LG 응원 플래카드에 박용택의 사인을 받아가기도 했다.
박용택 사인과 함께 '오지환 짱이라고 적어주세요' 라고 부탁한 LG팬. 박용택은 웃으며 "그렇죠. 오지환이 짱이죠"라고 웃으며 적어줬다. 한 팬의 '혹시 혼혈인 아니세요'라는 말에 이어 '한국과 천국의 혼혈'이라는 드립에, 박용택은 "예상하고 있었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박용택은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다음 사람이 건넨 물건에 사인을 해주면서, 앞서 사인을 받은 사람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때 ‘하나 둘 셋’이 아니고, 팬이 찍을 준비를 하고 있으면 사인을 잠깐 멈추고 ‘셋’하고 찍으라고 요령을 알려줬다.
사인과 사진 촬영으로 1분에 적게는 3명, 많게는 5명 정도 줄어들었다. 야구공은 시간이 적게 걸리고, 유니폼에 사인을 받으면서 이름, 날짜를 써달라는 부탁이 있으면 오래 걸렸다. 옆에서 10분 정도 지켜보면서 숫자를 세어보니 35명 정도 사인을 받았다. 1시간이면 200명 정도 사인을 받는다는 의미.
줄 서 있는 팬들의 숫자를 1000명으로 잡아도 5시간은 소요되고, 밤 10시부터 시작된 사인회는 새벽 3시를 넘어간다는 계산이 나왔다. 박용택은 “새벽까지 할 수 있다. 하다가 졸면 옆에서 깨워주실거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은퇴식에 와 준 팬들에게 모두 사인을 해주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이날 낮에는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밤 11시에도 잠실구장 인근은 28도, 박용택은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과 사진을 찍으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출판사 직원이 미니 선풍기를 들고 있었지만 땀 범벅이었다. 땀은 둘째,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팔에 마비가 올 것 같아 보였다.
박용택은 영구결번식의 고별사 도중에 "팀 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팬 보다 위대한 팀은 없다. 팬 보다 위대한 야구는 없다.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하겠는데, 가슴 깊이 진심으로 이를 새겨줬으면 한다"고 후배들을 향해 팬서비스를 부탁했다.
새벽까지 박용택은 자신이 팬서비스 끝판왕의 품격을 보여줬다. ‘아침까지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박용택은 “(월요일) 오전 9시에 최강야구 경기가 있는데…”라고 웃으며 말했다. /orang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