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T 위즈 마운드에 ‘전천후 잠수함’ 엄상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선발진에서 계속해서 잡음이 발생한 KT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가정이다.
KT 이강철 감독은 6월 평균자책점 7.27로 흔들린 배제성을 지난달 30일 1군 말소하며 대체 선발로 또 ‘이 투수’를 낙점했다. 올 시즌 불펜이면 불펜, 선발이면 선발 모두 제 역할을 해내는 ‘만능맨’ 엄상백이었다.
엄상백은 올 시즌 KT 야구의 언성 히어로다.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해 에이스 윌리엄 쿠에바스가 부상 이탈하자 4월 17일 사직 롯데전부터 선발을 맡아 두 달 가까이 공백을 훌륭히 메웠고, 6월 9일 새 외국인투수 웨스 벤자민의 데뷔와 함께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다가 그가 첫 등판에서 부상을 당하자 또 선발로 변신해 제 몫을 해냈다.
엄상백의 이동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벤자민의 복귀로 6월 26일부터 수원 LG전부터 7월 1일 수원 두산전까지 3경기 연속 중간을 담당했으나 배제성이 말소되며 오는 5~7일 광주 KIA 3연전에 다시 선발 등판 일정이 잡혔다.
엄상백의 올 시즌 기록은 19경기 6승 2패 평균자책점 3.44. 선발로 11경기 55⅔이닝 5승 2패 평균자책점 4.04, 구원으로 8경기 15이닝 1승 평균자책점 1.20으로 활약하며 남긴 성적이다.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 보직 변화가 잦았고, 또 그 속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사실 사령탑은 시즌 전부터 선발진 내 잡음을 예상하고 엄상백에게 전천후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쿠에바스와 벤자민의 잇따른 부상 이탈 속에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닝소화능력과 150km 강속구를 동시에 갖춘 그는 선발과 불펜이 모두 잘 어울리는 투수다.
이강철 감독은 “이 쪽 저 쪽 모두 잘해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활약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보이게끔 역할을 잘해준다”라며 “본인이 팀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잦은 보직 변경 또한 잘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또 야구가 잘 되니까 재미도 있을 것이다. 엄상백이 있기 때문에 배제성도 재정비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무한 신뢰를 보였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말이 전천후지, 시즌 도중 계속 보직이 바뀌는 건 선수 개인에게는 상당히 버거운 일이다. 선발과 불펜은 일단 준비하는 루틴 자체가 다르며, 마운드 위에서도 경기운영방식에 차이가 있다 . 또한 보직 변경을 어느 정도 예측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기존 선발진의 부상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엄상백의 양 쪽 호투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사령탑 역시 엄상백의 이러한 헌신이 고마울 뿐이다. 어떻게 보면 시즌 초반 하위권에서 전날 공동 4위로 도약하기까지 엄상백의 공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감독은 “분명 선발과 불펜을 자주 오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팀 상황에 맞게 맡는 보직마다 제 역할을 해주는 상백이가 고맙다”라고 제자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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