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500번째 선발등판 경기도 괴짜다웠다. 메이저리그 통산 221승에 빛나는 잭 그레인키(39·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운 날에도 범상치 않은 행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레인키는 지난 30일(이하 한국시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 6이닝 4피안타(1피홈런) 1볼넷 1사구 3탈삼진 1실점 호투로 캔자스시티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5회 레오디 타베라스에게 맞은 솔로 홈런이 유일한 실점.
팔 굴곡근 부상에서 돌아와 첫 경기였던 지난 25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서 캔자스시티 소속으로 12년 만에 승리투수가 된 그레인키는 이날도 승리를 따냈다. 시즌 2승(4패)째를 거두며 평균자책점도 4.68에서 4.38로 낮췄다.
이날 경기는 그레인키의 개인 통산 500번째 선발등판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지난 2004년 캔자스시티에서 데뷔 후 올해로 19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그레인키는 구원 42경기 포함 통산 542경기에 등판했다.
선발 500경기 등판은 메이저리그 역대 49번째 기록으로 KBO리그에선 아직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고지. KBO리그에선 송진우의 377경기가 최다 선발등판 기록으로 현역 투수 중에선 양현종(KIA)의 340경기가 최다 선발등판이다.
평소 남다른 행동과 개성으로 주목받는 괴짜답게 500번째 등판에서도 그레인키다운 일화가 있었다. 1-1 동점으로 맞선 5회 1사에서 그레인키는 조쉬 H. 스미스 상대로 3구째 패스트볼을 던진 뒤 투구를 이어가지 않고 잠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마이크 매시니 캔자스시티 감독이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마운드에 올라가려 했지만 그레인키가 괜찮다는 사인으로 돌려보냈다. 포수 MJ 멜란데즈와 3루수 니키 로페즈가 마운드에 와서 몇 마디 나눈 뒤 정상 투구를 이어갔다.
‘캔자스시티 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레인키는 마운드에 온 멜렌데즈와 로페즈에게 “조금 지치네. 잠깐이면 돼”라고 말했다. 이에 로페즈가 “여전히 좋아 보이는데 몇 살이야?”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레인키는 “꽤 늙었어. 나 올드맨이야”라고 답했다. 멜란데즈는 “재미있다. 그레인키는 자신을 잘 알고, 언제 휴식이 필요한지 안다. 잠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약 45초 동안 숨을 고르며 재충전한 그레인키는 스미스를 1루 땅볼 처리한 뒤 6회까지 추가 실점 없이 막았다. 그럼에도 그레인키는 “5회에 좋은 투구를 하지 못했다. 리셋을 하기 위해 휴식이 필요했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45초가 필요했다”며 10초에 한 번씩 투구하는 페이스를 잠시 멈춘 이유를 설명했다. 그레인키의 경험과 노련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역 투수 중 유일한 500번째 선발등판. 그레인키에게 나름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기록에 관심이 별로 없지만 오늘이 500번째 선발 경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꽤 좋은 숫자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