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방수라 생각했을까?
지난 2020년 7월1일 광주 한화전. 1-3으로 뒤진 가운데 9회초 19살 루키가 마운드에 올랐다. 데뷔전이었다. 1이닝을 깔끔하게 무실점으로 막았다. 첫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었지만 병살을 유도했고, 간판타자 김태균을 삼진으로 잡았다. 그것도 3구만에 돌려보냈다. 9회말 타선이 터져 4-3으로 승리했다.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내고 히어로 인터뷰 단상에 올랐다.
이 때까지도 정해영이 KIA의 소방수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못했다. 입단할 때부터 후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1차 지명도 받지 못할 뻔 했다. 광주일고 3학년 때 스피드가 137~138km로 줄었던 것이 이유였다. 1차 지명자 계약금도 2억 원이었다. 1년 선배 김기훈은 3억5000만 원을 받았다.
스프링캠프 명단에 들어 스피드와 구위가 좋아지며 어필했으나 개막전 1군 엔트리는 탈락했다. 대신 퓨처스 팀에서는 선발수업을 했다. 1군 선발진의 지원군이었다. 8경기에 등판해 ERA 5.50. 두 달 째가 되어도 1군에서 콜업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러다 6월 말 더블헤더 특별엔트리 자리가 비면서 임시 선발로 콜업을 받았다. 그런데 비가 내려 더블헤더가 없어지면서 등판기회를 잡지 못했다. 언제 다시 2군으로 내려갈 지 몰랐다.
그러다 한화전에 데뷔를 했다. 만일 한화전에서 의미있는 투구를 못했다면 다시 퓨처스행 가능성이 높았고, 지금의 정해영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19살 루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갈수록 힘 좋은 공을 던지고, 마운드에서 듬직한 모습을 보였다. 올라가면 팀이 이겼다. 추격조에서 필승맨으로 승격했고, 어느새 소방수로도 한 번 나섰다. 47경기 5승1세이브11홀드의 우등성적을 올렸다.
2021 마무리 투수는 전상현이었다. 그런데 어깨통증으로 팀을 이탈하자 맷 윌리엄스 감독은 정해영을 대안으로 낙점했다. 제구와 배짱, 강속구는 아니지만 직구의 힘이 좋아 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최연소 30세이브, 임창용과 타이거즈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34SV)까지 세워버렸다. 5승과 8무승부가 아니었다면 40세이브도 가능했다.
2022년도 부동의 소방수로 뛰면서 어느새 20세이브를 기록하며 타이틀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07~2008년 한기주 이후로 처음으로 2년 연속 20세이브기록이다. 최연소 통산 50세이브도 달성했다. 이런 추세라면 2년 연속 30세이브를 넘어 타이거즈 최다 신기록과 최연소 40세이브까지 넘볼 기세이다. 독보적인 세이브 기록 보유자가 될 정도로 꾸준히 성장히고 있다. 이젠 멀티 이닝도 소화하고 있다.
김종국 감독은 "볼끝의 회전과 수직 무브먼트가 좋다. 타자들이 느끼는 스피드가 실제보다 더 빨라 정타가 나올 확률이 적다. 어리지만 배짱도, 요령도 좋다. 제구력이 좋아 빨리 승부한다.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를 빨리 나오도록 유도한다. 예의도 깍듯해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선수이다"고 극찬했다.
KIA는 로또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임창용 이후 20년 넘게 그렇게 찾고 또 찾았던 마무리 투수를 얻었다. 아무도 생각치 못했던 소방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다. 연봉은 1억7000만 원에 불과하다. 아직 만 21살이 되지 않았는데도 55세이브를 수확했다. 본인은 만족하지 못한다. 출루없이 완벽하게 1이닝을 막아야 진정한 세이브 투수라는 생각이다. 정해영의 성장세가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