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팀에서 주장은 투수가 아닌 야수가 맡는 게 관례다. 같은 팀이어도 야수와 투수는 훈련 때부터 경기 중에도 움직이는 동선이 다르다. 매일 경기에 나가는 야수가 선수단 전체를 이끄는 주장에 더 적합하다는 분위기가 있다. 올해 KBO리그 10개팀 주장도 전부 야수들이다.
하지만 현재 한화는 투수 장민재(32)가 임시 주장 완장을 차고 있다. 주장 하주석이 지난 16일 대전 롯데전에서 볼 판정에 과격한 반응을 보여 논란이 되면서 이튿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장민재에게 임시 주장을 맡겼다. 하주석의 10경기 출장정지 징계가 해제되고 1군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장민재가 주장 임무를 맡는다.
수베로 감독은 야수가 아닌 투수 장민재를 임시 주장으로 낙점한 이유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다. 야구장에 매일 일찍 나오고, 행동으로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감정적으로도 기복이 없고, 열정이 있다. 우리 팀에 폭풍 같은 2주였는데 장민재가 폭풍을 잠재울 수 있는, 팀의 색깔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해 결정했다”고 답했다.
지난 2009년 한화에 입단한 장민재는 올해로 14년차. 한화 선수들 중 팀에 가장 오래 몸담고 있는 베테랑이다. 매일 야구장에 일찍 출근하는 성실함, 보직에 연연하지 않고 팀을 위한 헌신하는 자세를 수베로 감독이 주목하고 있었다.
주장으로서 리더십도 발휘했다. 지난 23일 잠실 LG전이 우천 취소된 뒤 선수들을 모아 5분가량 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장민재는 “연패가 길어지니 투수는 (꼭 아웃을) 잡으려고, 타자는 자기가 쳐서 책임지려고 한다. 그보다 실수 줄이는 것만 집중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고 주문했다.
이튿날 대전 삼성전에 선발로 나선 장민재는 5⅓이닝 4피안타 2볼넷 1사구 2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팀의 10연패 탈출을 이끌었다. 수베로 감독 말대로 2주간 이어진 팀의 폭풍을 잠재운 투구. 그는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셔서 주장 역할에 책임감이 있다. 주장 역할이 앞에서 팀을 이끌어가는 것도 있겠지만 뒤에서 디테일한 부분부터 선수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팀 내 신망이 두터운 장민재는 상대 선수를 향한 매너도 남다르다. 이날 삼성전에서 1회 호세 피렐라에게 초구에 왼쪽 팔꿈치 쪽을 맞혔다. 공이 손에서 빠져 나온 실투. 이에 장민재는 피렐라를 향해 사과 의사를 표시했다. 선후배 관계로 얽힌 KBO리그에서 투수가 사구 후 타자에게 사과하는 문화가 자리잡았지만 외국인 타자에게 사과하는 모습은 흔치 않다.
장민재는 “일부러 던진 게 아닌데 너무 아픈 곳을 맞혔다. 경기를 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내 실수였다. 미안한 마음에 손짓으로 미안하다고 했다”며 “피렐라도 흔쾌히 받아줘서 괜찮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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