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작년 시범경기로 돌린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해 전설 최동원을 넘은 MVP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프로선수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정도로 제구력이 엉망이었다. 두산은 과연 어떤 결단을 내릴까.
아리엘 미란다(두산)는 지난 2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KIA와의 시즌 8차전에 선발 등판해 ⅔이닝 0피안타 7사사구 2탈삼진 4실점 대참사를 겪었다.
1회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박찬호-이창진-소크라테스 브리토에게 3연속 볼넷을 헌납하며 무사 만루를 자초했다. 이후 일시적으로 제구가 잡히며 나성범을 삼진 처리했으나 후속 황대인에게 풀카운트 끝에 밀어내기 볼넷을 내줬다. 이후 최형우를 삼진으로 잡고 2사 만루서 김선빈(사구)-박동원(볼넷)-류지혁(볼넷)에게 3타자 연속 밀어내기를 허용, 1회에만 안타 없이 대거 4실점했다.
미란다는 결국 0-4로 뒤진 1회 2사 만루에서 박신지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부상 복귀전을 씁쓸하게 마쳤다. 박신지가 박찬호를 2루수 땅볼 처리하며 승계주자 3명이 모두 지워졌지만 이미 4사구 7개-4점을 내준 뒤였다. 투구수는 46개(스트라이크 17개).
미란다는 이른바 제구 참사로 KBO리그 역대 한 이닝 최다 4사구 불명예를 썼다. 종전 1997년 4월 17일 잠실 LG전 1회 해태 이강철, 2001년 8월 18일 무등 KIA전 1회 롯데 김영수, 2013년 6월 6일 목동 삼성전 5회 넥센 강윤구, 2021년 9월 11일 잠실 두산전 1회 LG 김윤식의 6개를 뛰어넘었다. 그래도 직구 최고 구속을 146km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으나 아마추어급 제구로 인해 밀어내기로만 4점을 내줬다. 이는 역대 3번째 무안타 타자일순이었다.
미란다는 지난 시즌 ‘전설’ 최동원의 최다 탈삼진 기록을 경신(225개)하며 정규시즌 MVP와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종전 80만 달러(약 10억 원)에서 110만 달러 인상된 190만 달러(약 25억 원)라는 거액에 재계약했다.
작년의 투혼이 독이 됐을까. 미란다는 스프링캠프서 돌연 어깨 통증을 호소하더니 4월 23일 LG전 3이닝 2실점 이후 어깨 근육 뒷부분이 미세 손상되며 두 달이 넘게 1군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밸런스까지 문제가 생겨 복귀 플랜이 연기됐고, 18일 퓨처스리그 삼성전(3이닝 무실점)을 거쳐 63일 만에 복귀전이 성사됐다.
미란다를 향한 기대치는 크지 않았다. 2군에서 3이닝 동안 볼넷이 4개에 달했고, 직구 최고 구속도 144km에 불과했던 터. 김태형 감독은 “구속이 이전처럼 나오긴 힘들다”라며 “제구력과 함께 경기 운영이 되는 수준이면 좋겠다.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야 한다”라고 마음을 비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령탑의 작은 바람조차 그에겐 사치였다. 구속이 문제도 아니었다. 사령탑들이 흔히 말하는 ‘계산이 서지 않는’ 투구가 1회 9타자를 상대하는 내내 지속됐다. 마치 평균자책점 94.50 충격 참사를 겪었던 지난해 3월 22일 한화와의 시범경기가 재현된 듯 했다. 미란다는 당시 ⅔이닝 3피안타 5볼넷 2탈삼진 7실점으로 실망스러운 데뷔전을 치렀다.
공동 7위까지 떨어진 두산은 계속해서 미란다를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이미 두 달이라는 기간도 ‘용병’인 외국인선수 치고는 상당히 오랜 기다림이었다. 그러나 또 반대로 대체 외국인선수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계약이 성사된다고 해도 적응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또 그렇다고 외국인선수를 1명 제외하고 선발진을 운영할 정도로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다.
과거 “6월 말까지 안 되면 교체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김태형 감독이 전날 투구를 보고 어떤 결단을 내렸을지 궁금하다. 기다림과 교체 사이의 갈림길에서 이제는 정말 한 곳을 택해야하는 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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