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타석 연속 무안타. KBO리그 역대 4번째 긴 침묵의 터널에서 벗어난 김헌곤(34·삼성)의 표정은 덤덤했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놨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헌곤은 25일 대전 한화전에서 2회 우전 안타를 치고 나갔다. 남들에겐 그저 평범한 안타 하나로 보일 수 있지만 김헌곤에겐 누구보다 간절한 안타였다. 1루에 나간 김헌곤은 두 손을 모아 작게나마 기쁨을 표했다.
지난달 28일 잠실 LG전부터 22일 대구 키움전까지 김헌곤은 20경기에서 43타석 동안 단 하나의 안타도 치지 못했다. KBO리그 역대 4번째로 길었던 연속 무안타 기록이었지만 아예 없었던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팀 성적이 떨어지는 시점과 맞물려 김헌곤의 중압감도 타석수가 쌓일수록 커졌다.
허삼영 삼성 감독은 “이전에 진갑용(42타석)도 있었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팀과 같이 어려워지면서 (심적으로) 몰리고 있다. 3할을 못 쳤던 타자라면 기술적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야구를 20년 넘게 했는데 폼의 문제는 아니고 결국 중압갑, 멘탈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구자욱을 비롯해 팀 내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김헌곤이 2군으로 내려가 재조정할 여유도 없었다. 28일 동안 1군 엔트리에 있었지만 안타 1개를 못 쳤다. 선수단을 이끄는 주장이기도 한 그는 누구보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25일 한화전에서 마침내 긴 암흑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경기 후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김헌곤은 겸연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인터뷰 하는 게 그렇다. 아직 반전을 이뤘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건 말도 안 된다. 조심스럽고, 조금 부끄럽다”며 손사래쳤다.
그래도 주변에서 위로하고 응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코치님들부터 (오)재일이형, (강)민호형, 후배들까지 모든 동료들의 위로 한마디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그걸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김종훈, 이영수 타격코치님들부터 타격 파트가 아닌 코치님들까지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보는 사람마다 거의 다 타격이든 멘탈적으로든 좋은 말들을 해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안 맞은 건 처음이다. (경기에) 나가는 게 고통스러웠다. 누가 나가도 나보다 잘할 수 있는데 내가 나가는 순간은 (팀이) 이길 수 있는 플레이를 해야 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드는데 야구라는 게 마음 같지 않다. 야구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게 그런 것 같다. 다시 한 번 느꼈고,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긴 악몽에서 벗어났지만 김헌곤은 웃지 않았다. 시즌 내내 이어진 답답함을 풀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는 “(무안타 기간) 삼진이 적긴 했지만 인플레이 타구라도 수비가 없는 곳으로 쳐야 했다. 타구의 질이 좋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변명 없이 반성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