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에인절스의 홈구장 에인절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 홈플레이트 입구 정문에는 간판 선수 6명의 대형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투수는 글러브를, 타자는 방망이를 쥐고 포즈를 취했는데 오타니 쇼헤이(28)의 사진은 뭔가 좀 다르다. 글러브를 낀 채로 배트는 어깨 위에 얹었다. 구장 입구에서부터 그가 어떤 선수인지 알 수 있다. 현존 유일의 투타겸업 선수.
오타니는 지난해 첫 풀타임 투타겸업으로 새 역사를 썼다. 투수로 23경기 130⅓이닝을 던지며 9승2패 평균자책점 3.189 탈삼진 156개를 기록하며 타자로도 155경기 타율 2할5푼7리 138안타 46홈런 100타점 10득점 26도루 96볼넷 OPS .965의 특급 성적을 냈다. 역대 최초 올스타전 투타 겸업 선수로 나섰고, 시즌 후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
갈수록 정교하게 분업화되는 현대 야구에서 투타겸업은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만화에서나 볼 법한 야구를 풀타임으로 2년째 실현 중인 오타니는 경외의 대상이 됐다. 올해는 오타니 룰까지 생겼다. 선발투수로 나서 교체가 되더라도 지명타자로 남아 계속 경기에 남을 수 있도록 규칙도 바뀌었다.
올해도 투타겸업 신화는 계속 된다. 지난 22일(이하 한국시간) 캔자시스티 로열스전에서 타자로 홈런 2개 포함 8타점으로 개인 최다 기록을 세운 바로 다음날 투수로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을 썼다. 23일 캔자스시티전에서 8이닝 2피안타 1볼넷 13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를 따냈다. 연이틀 투타에서 개인 커리어 하이 기록. 전날 8타점을 올린 타자가 다음날 투수로 탈삼진 10개 이상 잡은 건 베이브 루스도 못한 메이저리그 최초 역사다.
시즌 전체 성적도 투수로 12경기 68⅓이닝을 던지며 6승4패 평균자책점 2.90 탈삼진 90개를 기록하며 타자로도 69경기 타율 2할6푼 69안타 15홈런 45타점 44득점 7도루 OPS .823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만큼 압도적인 성적은 아니지만 최고 101마일(163km) 강속구를 던지며 최대 443피트(135m)까지 홈런을 날리는 선수는 오타니가 유일무이하다.
미국에서도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오타니는 어딜 가나 주목받는다. 이런 오타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본 취재진도 구름같이 몰려다닌다. 오타니가 선발로 등판하는 날에는 적어도 40여명의 일본 취재진들이 야구장을 점령한다. 미국보다 일본 기자들이 훨씬 더 많고, 기자실에 자리도 늘 부족하다.
에인절스타디움 곳곳에선 일본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일본 관중들이 워낙 많아 동양인만 보면 미국인들도 일본어로 인사를 할 정도. 구단 상품점에도 오타니의 영문 및 한자 이름이 박힌 유니폼과 티셔츠, 야구공 등 관련 굿즈가 넘친다. 취재진의 클럽하우스로 가는 길에도 표지판에는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도 적혀있다. 대규모 일본 기자들을 전담 마크하는 일본계 홍보 직원까지 있다.
매일 대규모 취재진이 따라다니지만 오타니는 귀찮거나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경기 후 미국 취재진과 먼저 인터뷰한 뒤 일본 취재진과 따로 추가 인터뷰를 하면서도 성심성의껏 답한다.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항상 그렇게 한다. 인터뷰할 때도 웬만해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거리를 두는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와는 다르다. 실력에 인성까지 갖춘 오타니를 바라보며 일본 취재진도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오타니가 야구 그 자체이자 일본의 자랑으로 범국민적 사랑을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