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모이어와 저스틴 벌랜더의 케이스
[OSEN=백종인 객원기자] 2008년. 제이미 모이어의 21번째 시즌이었다. 46세라는 나이가 무색하다. 196⅓이닝을 던지며 16승 7패(ERA 3.71)를 기록했다. 평생 처음 월드시리즈 무대에도 섰다. 필리스 우승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됐다. 자녀 7명(지금은 8명) 중 장남은 이미 대학생이었다.
이듬 해는 별로다. 162이닝에 12승 10패로 평범했다. 후반기 추락이 심각했다. ERA가 4.84로 치솟는다. 나이는 어쩔 수 없구나. 그런 수군거림이 들린다. 월시 엔트리에도 제외됐다(박찬호의 첫 WS).
하지만 끝이 아니다. 새로운 봄(2010년 5월), 고목에 꽃이 핀다. 브레이브스전에서 2피안타 셧아웃 게임을 이뤘다. 필 니크로를 넘어서는 최고령 기록이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모두 완봉승을 달성한 유일한 투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더 이상 필리스에서의 기회는 어렵다. 트레이드 거부권(10-5권리)을 스스로 포기했다. 공 던질 곳을 찾기 위해서다. 오프 시즌에 도미니카로 떠났다. 어린 유망주들이 가는 윈터리그에 지원했다.
거기서 팔꿈치 통증이 악화됐다. 1차 소견은 심한 인대 손상이다.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받아들이기 힘든 진단이다.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루이스 요컴이라는 외과의다. MRI를 살피더니 밝은 표정으로 환자를 맞는다.
그리고 이렇게 안심시킨다. “나쁘지 않아요. 파손 상태가 깔끔해서 근처 조직에 손상이 크지 않군요. 손을 잘 보면 될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는 지장 없을 거예요. 잘하면 골프도 치고, 간단한 캐치볼도 할 수 있어요.”
의사 양반도 참, 몰라도 한참 모른다. 환자가 어떤 사람인가. 희끗한 중년이 벌컥한다. “골프라뇨. 그런 얘기 들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예요. 나는 공을 던져야 한다구요.” 누가 말리겠나. 이틀 뒤. 결국 수술실에 불이 켜진다. 곧 48번째 생일을 맞을 사람이다. 달포 뒤면 (우리 나이로) 반백이 되는 나이다.
금강벌괴가 자청한 인터뷰 “다들 미쳤어요?”
지난 해 5월이다. 뜬금없는 공지가 떴다. 금강벌괴가 인터뷰를 자청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다. 감안한 온라인 스케줄이다. 기자들 반응은 비슷했다. ‘역시’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뭐 그런 생각들이다. 당연히 은퇴 발표를 예상했다.
하긴 뭐. 꽉 찬 38세다. 그것도 빠른 년생이다(2월). 수술로 1년을 허송했다. 저스틴 벌랜더. 모두 가진 남자 아닌가. 아쉬울 게 뭐 있겠나. 깔끔하게 정리하는구나. 그런 소문이 파다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웬걸. 정반대다. 모니터에 등장한 그는 낄낄거린다. 첫 마디가 이거였다. “ㅋㅋㅋ. 내가 은퇴한다구요? 다들 미쳤군요. 하도 그런 소리가 많아서 인터뷰하는 거예요. 절대 아닙니다. 난 다시 돌아갈 겁니다. 아직도 열정이 가득해요. 앞으로 오랫동안 던질 거예요.”
1년 뒤. 그의 말은 입증됐다. 신화적인 재기에 성공했다. 올 시즌 13경기에서 8승 3패, ERA 2.30를 찍었다. 20대 못지 않은 구위다. 패스트볼에서 불꽃이 튄다. 100마일에 육박한다.
그 때만 해도 상상 못한 일이다. 2020년 10월이다. 37세 투수가 몸에 칼을 댄다. 존 로젤리라는 전문가가 이런 분석을 내놨다. ‘프랭크 조브 박사가 토미 존에게 처음 시술한 뒤로 이제까지 2000명이 넘는 프로선수가 이 수술을 받았다. 그 중 (벌랜더 처럼) 37세가 넘는 투수는 10명 뿐이다. 이들은 보통 12~14개월 정도 재활 과정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대부분 선발 자리를 못 지키고, 불펜으로 밀려났다. 그나마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브론슨 아로요가 반 시즌, 제이미 모이어 역시 초여름에 방출된 뒤 빅리그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벌랜더는 확신했다. “일단 결정한 일이 입니다. 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자신 있어요. 적절한 재활 프로그램과 확고한 의지로 이겨낼 겁니다. 이 수술이 내 경력을 단축시키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연장해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먹튀 논란 – 맨얼굴 드러낸 팬들과 미디어
괴물이 오랜만에 LA를 찾았다. 달가운 방문은 아니다. 진단과 수술 때문이다. 집도의는 잘 아는 사람이다. 켈런-조브 클리닉의 닐 엘라트라체 박사다. 2015년 어깨를 맡겼던 의사다. 그 때보다는 간단한 작업이다. 팔꿈치 인대 이식 수술이다. 흔히 말하는 토미 존 서저리다.
스포츠넷 캐나다는 이렇게 전했다. ‘인대를 완전히 제거하고 재건(Full Tommy John)했다. 수술을 성공적이다. 앞으로 12~18개월이 필요하다.’ 블루제이스 구단은 이런 코멘트를 내놨다. “팔꿈치 인대의 완전한 재건을 택한 이유는 기간의 단축보다 확실한 치료를 바라는 본인의 판단 때문이다.”
그의 수술을 놓고 말들이 많다. 일부 미디어는 맨얼굴을 드러낸다. FA계약의 효율성, 적절성에 비판적이다. 남은 기간, 잔여 연봉에도 시시콜콜하다. 매정하긴 팬들도 마찬가지다. 먹튀 논란이 넘실댄다. 한편으로는 비관론이 가득하다. ‘잘 해야 내년 하반기다.’ ‘37~38세에나 돌아온다.’ 암울한 전망 뿐이다.
하지만 못 마땅한 말들이다. 모르는 사람 어디 있겠나. 새삼스러울 필요 없다. 탓하고, 찡그리고, 지적질하고. 그런 거 나중에 해도 된다. 다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정작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은 따로 있다. 다시 던지기 위한 결심, 그리고 앞으로의 과정이다. 그냥 묵묵히 지켜볼 따름이다.
잔인하고 혹독한 시련이었다. 그는 이미 몇 차례를 겪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견뎌냈다. 이번에도 돌아올 것이다. 다시 마운드에 설 것이다. 그리고 그건 올스타전 선발 투수나, 사이영상 레이스를 펼친 것만큼 가치 있는 도전일 것이다.
제이미 모이어 부부가 수술을 전날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다. “우리는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이다. 슈퍼맨은 컴백할 것이다.” (모이어는 2년 후 캠프 초청선수로 로키스에 합류했다. 이후 전반기에 선발로 2승을 올렸다. 49세 180일. 깨지기 힘든 최고령 기록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