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되고 한국은 안 될까.
이웃 나라에서 매년 150~160km 파이어볼러가 양산될 때마다 흔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한국인과 비슷한 체격 조건을 갖춘 일본인이 신기하게도 야구의 본고장인 메이저리거들 못지않은 강속구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와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 마린스)라는 괴물 투수를 동시대에 탄생시킨 일본. 여기에 최고 구속이 아닌 평균 구속이 150km대에 달하는 투수들이 자국 리그에 수두룩하다. 단순히 공만 빠른 게 아닌 정교한 제구력까지 갖춰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발휘한다.
일본프로야구(NPB)는 역사와 인프라에서 KBO리그에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가장 단순한 비교로 고교야구팀 숫자가 일본이 약 4,000개로 약 80개인 한국과 엄청난 차이가 난다. 프로야구팀은 일본이 12개로 한국보다 2개 더 많지만 4,000개에서 12개 구단으로 향하는 것과 80개에서 10개 구단 선수를 뽑는 건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아울러 KBO리그보다 46년 먼저 출범(1936년)한 NPB는 풍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역사가 긴 만큼 선수 육성 또한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됐을 터. 특히 프로야구 성공의 밑거름인 유소년 야구부터 남다른 육성법으로 수많은 파이어볼러를 양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OSEN은 일본 아마추어 야구를 경험한 2명의 KBO리거를 찾아 이웃 나라 육성의 세계를 들어보기로 했다. 오타니와 사사키는 어린 시절 어떤 훈련을 통해 지금의 괴물 투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재일교포 3세인 안권수(29, 두산)는 일본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와세다 실업 고등학교와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독립 리그(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 무사시 히트 베어스), 실업 리그(카나플렉스 코퍼레이션)를 거쳐 지난 2020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10라운드 전체 99순위로 두산의 지명을 받고 프로선수의 꿈을 이뤘다.
안권수가 꼽은 일본 유소년 투수의 눈에 띄는 훈련은 러닝. 경기에서 주력이 크게 필요 없는 투수이지만 야수보다 러닝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안권수는 “일본 투수들은 단거리를 뛰면 야수보다 빠르다. 그러나 한국은 야수가 더 빠르다. 투수들이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순발력을 갖추게 된다”라며 “또한 러닝을 많이 하니까 살이 찔 수 없다. 일본 투수를 보면 뚱뚱한 사람이 거의 없다. 안우진(키움) 같은 체구의 투수들이 대부분이다”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무조건 투수가 야수보다 많이 뛴다고 보면 된다. 고등학교 때까지 기본적으로 러닝만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의 경우 겨울에만 잠깐 한다. 그러나 겨울에도 러닝이 우선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이 곧 러닝이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안권수는 대학 시절 동료였던 아리하라 고헤이(텍사스 레인저스)와 다카나시 유헤이(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예로 들었다. 아리하라는 NPB 통산 60승을 앞세워 2021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다카나시는 현재 요미우리 필승조로 활약 중이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투수임에도 모두 주력이 좋다는 것이다.
안권수는 “아리하라가 대학교 1년 선배인데 장거리, 단거리 모두 잘 뛴다”라며 “요미우리 왼손 사이드암 다카나시도 대학 때 러닝을 정말 열심히 했다. 어릴 때부터 러닝을 워낙 많이 하니까 기초 체력이 뒷받침되는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다만 그렇다고 러닝을 많이 하는 투수가 꼭 강속구를 던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구속 향상에 있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순 있다. 안권수는 “일본은 일단 야구선수 자체가 많다. 야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잘하는 선수들이 나올 확률이 높다”라며 “훈련에 있어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한국, 일본 모두 각자의 육성 방식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안권수의 동료인 신성현(32, 두산) 또한 일본에서 오랫동안 야구를 배웠다. 덕수중을 졸업하고 대한해협을 건너 교토국제고로 향한 뒤 2008년 10월 일본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지명을 받았다. 물론 1군 출전 없이 2013년 10월 방출 통보를 받았지만, 일본 아마추어와 프로를 모두 경험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신성현도 안권수와 마찬가지로 혹독했던 러닝 훈련을 떠올렸다. 그는 “아마추어 때를 돌이켜보면 확실히 투수들에게 러닝을 많이 시켰다. 야수보다 투수의 러닝 시간이 더 길었다. 히로시마도 마찬가지였다”라고 설명했다.
고교 시절부터 파이어볼러를 만나는 일도 잦았다. 신성현은 “1.5군급 선수부터 1군 선수까지 기본적으로 공이 다 빠르다. 여기에 변화구까지 예리하다. 제구가 매우 좋았던 기억이 난다”라고 회상했다.
여기에 또 하나. 신성현은 10대 시절 일본 아마추어 선수들의 야구를 향한 열정에 놀랐다. 그는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 ‘잘하고 싶다’라는 의지가 매 순간 느껴졌다”라며 “한 가지 사례가 있다. 내가 아마추어 때만 해도 일본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강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실력 있는 선수들은 스스로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느끼고 먼저 시도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고, 한국 또한 야구 선진국인 미국, 일본을 따라 개인의 열정이 뒷받침된 체계적인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고우석(LG), 안우진(키움), 장재영(키움), 조요한(SSG), 문동주(한화) 등 최고 구속이 150km 후반대에 달하는 파이어볼러도 이전보다 확연히 증가했다.
신성현은 “물론 아직 일본의 평균 구속이 한국보다 빠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공 빠른 젊은 투수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일본과 차이가 크지 않았나”라며 “요즘 SNS를 보면 우리 아마추어 선수들이 야구를 잘하겠다는 열정 하나로 개인 레슨을 받거나 영상을 찾아본다. 이런 선수들이 많아지면 수준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긍정적인 면을 짚었다.
이어 “모든 감독님, 코치님, 선배님들이 야구에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매 순간 고민해도 어려운 것이 야구다”라며 “개인적으로도 이 주제를 꾸준히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야구 인구 자체가 한국에 비해 일본이 훨씬 많다. 따라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 숫자에서 차이가 나지만, 지금처럼 선수들이 의지를 갖고 욕심을 낸다면 우리나라도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밝은 전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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